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경산공 경산현령 ( 慶山縣令 ) 이원근 ( 李元謹 )
이원근 (1501~1564) 의 본관 ( 本貫 ) 은 덕수 ( 德水 ), 자 ( 字 ) 는 노숙 ( 魯叔 ) 이다 .
증조 ( 曾祖 ) 는 온양군사 ( 溫陽郡事 ) 증 ( 贈 ) 좌찬성 ( 左贊成 ) 추 ( 抽 ) 이고 , 조 ( 祖 ) 는 홍산현감 ( 鴻山縣監 ) 증 ( 贈 ) 대사헌 ( 大司憲 ) 의석 ( 宜碩 ) 이며 , 1501 년 1 월 ( 연산 7) 아버지 경상좌도수군절도사 ( 慶尙左道水軍節度使 ) 울 ( ? ) 과 어머니 숙부인 ( 淑夫人 ) 신천강씨 ( 信川康氏 . 현감 ( 縣監 ) 윤보 ( 允寶 ) 의 딸 ) 와의 삼남 일녀 중 장남으로 출생하였다 .
1537 년 ( 중종 32) 생원시에 합격하였고 1546 년 ( 명종 1) 경안도 찰방 ( 慶安道察訪 ) 에 임명됨으로서 처음으로 관직에 나아갔다 . 임기를 마치고 사옹원 직장 ( 司饔院直長 ) 으로 옮기었고 , 이어 내자시 주부 ( 內資寺主簿 ) 를 역임하였다 .
사헌부 감찰 ( 司憲府監察 ) 을 역임하고 외직으로 나가 임실현감 ( 任實縣監 ) 에 제수되었고 임기를 마치고 승진하여 경산현령 ( 慶山縣令 ) 겸 대구진관병마동첨절제도위 ( 大邱鎭管兵馬同僉節制都尉 ) 에 임명되었다 .
임기를 마치고 경기도 광주 ( 廣州 . 현 성남시 고등동 등자리 ) 에 은거하다가 1564 년 ( 명종 19) 12 월 졸하니 향년 64 세이다 .
초배 ( 初配 ) 는 증 ( 贈 ) 숙인 ( 淑人 ) 진주하씨 ( 晉州河氏 . 봉사 ( 奉事 ) 취홍 ( 就洪 ) 의 딸 ) 인데 , 늦은 나이에도 대 ( 代 ) 를 이을 아이가 생기질 않자 , 의 ( 義 ) 를 위하여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.
계배 ( 繼配 ) 증 ( 贈 ) 숙인 ( 淑人 ) 진주정씨 ( 晉州鄭氏 . 기장군수 ( 機張郡守 ) 희경 ( 熙慶 ) 의 딸 ) 와의 이남 일녀를 두었으니 , 충무위 부사용 ( 忠武衛副司勇 ) 증 ( 贈 ) 승정원 좌승지 ( 承政院左承旨 ) 적 ( 適 ) 이 맏이고 , 순천군수 ( 順川郡守 ) 증 ( 贈 ) 영의정 ( 領議政 ) 통 ( 通 ) 이 차남이며 , 딸은 해주인 ( 海州人 ) 찰방 ( 察訪 ) 준 ( 濬 ) 에게 출가하였다 .
사후 통 ( 通 ) 의 후손들이 과거에 연이어 급제하며 벼슬이 높아지자 통훈대부 사헌부 집의 ( 通訓大夫司憲府執義 ) 의 증직 ( 贈職 ) 을 받았다 .
묘소는 계배 ( 繼配 ) 숙인 진주정씨의 뜻에 따라 초배 ( 初配 ) 진주하씨와 합폄 ( 合? ) 하여 파주시 문산읍 선유 5 리 산 13-1( 현 ‘ 문산첨단산업단지 ' 내 공원 ) 에 쌍분으로 장사지냈으며 , 정씨는 성남시 수정구 고등동 산 37-4 덕수이씨 선영 아들 통 ( 通 ) 의 묘소 아래에 장사지냈다 .
| 원근(元謹) | 呼: 12世 경산공(慶山公) 의정부 조부 | |
| 字 | 노숙(魯叔) | |
| 生 | 1501-1564 | (연산군7-명종19) |
| 의석 | ||
| 군수 정희경 | ||
| 경기 파주시 문산읍 선유리 산 14번지 | ||
| 년 월 일 | 왕 조 | 연 령 | 적 요 |
| 1501. | 연산7 | ||
































