정재공

정재공 은 1531 년 사헌부감찰 ② 원字수字 (元秀) 와 신사임당 사이의 사형제중 둘째 아드님으로 태여 나셨다.

형제분은 맏이가 죽곡공 ( 竹谷公 ) 선 ( 璿 ), 둘째분이 정제공 번 , 셋째분 율곡 ( 栗谷 ) 이 ( 耳 ) , 막내 분이 옥산공 ( 玉山 ) 우 ( 瑀 ) 이시다 . 정재공이 20 세 되던 해에 어머니이시며 우리나라 최고의 현모양처로 일컬어지시는 신사임당께서 돌아 가셨으며 , 30 세 되던 해에 아버님 마져 돌아가셨기에 형제분들의 우애는 더욱 애뜻하였다 .

맏형이신 선도 47 세의 이른 나이에 돌아가시게 되어 정재공은 나머지 형제분들의 부모이자 맏이로서의 역활을 해야만 하셨다 . 대현이신 동생 율곡선생 뿐만아니라 옥산공은 언제나 부형의 예로써 정재공을 대해셨다고 기록은 전해진다 . 정재공은 가끔 엉뚱한 면모도 보이셨는데 당시 당상 ③ ( 堂上 ) 의 벼슬에 계신 율곡선생을 마구 불러 곧잘 심부름을 시키신곤 하셨는데 율곡께서는 추호도 꺼리김 없이 예로서 그뜻을 받들곤 하셨다 . 이를 본 율곡선생의 제자들이 가끔 ' 선생님의 신분으로 지나친공손이 아닙니까 ' 하고 하면 율곡선생께서는 " 부형앞에 신분이 무슨 소용이 있느냐 부형앞에 지나친 공손이란 있을수 없다 " 고 오히려 제자들을 나무라시곤 하셨다 .

이렇듯 정재공이 율곡선생을 곤란하게 하는 일이 있었으나 이는 부형으로써 예절을 잊지 않도록 하고자 하는 뜻이 계셨으며 오늘날 율곡선생의 시문이 많이 전하게 된것은 정재공이 모두 기록과 보존한데 그공이 있다고 할수 있다 . 또한 정재공은 동생이신 율곡선생에게 누가 될까 두려워 글읽기를 게을리하지 않으셨으며 나라에서 통덕랑 ④ ( 通德郞 ) 의 벼슬을 제수 받았으나 이를 사양 하셨다 . 정재공은 1590 년 1 월 15 일 향년 63 세에 돌아 가셨으며 묘는 배우자 남양홍씨 ⑤ 와 함께 충청북도 괴산군 사리면 화산리 오룡마을 서당골 ⑥ 에 있다 .